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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소식

작성일 : 26-05-0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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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용권〉문해력 논쟁의 착시, 문제는 ‘언어 권위주의’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
  링크 https://www.j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0000032901 [1]


최근 ‘사흘을 4일로 안다’는 논란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관심은 다시 ‘문해력 위기’라는 익숙한 구호로 쏠리고 있다. 이어 한자 교육 강화론까지 제기되며 문제의 원인을 대중의 언어 능력 부족으로 돌리는 흐름이 형성됐다. 그러나 이 논쟁이 실제로 드러내는 것은 문해력의 붕괴가 아니라, 현실과 괴리된 공적 언어의 관행, 곧 ‘언어 권위주의’다.

‘사흘’은 3일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틀린 표현이 아니다. 다만 오늘의 일상에서는 ‘3일’처럼 직관적인 표현이 더 널리 쓰이고, 더 빠르게 이해된다. 언어의 기준은 규범 이전에 사용과 이해 가능성에 있다. 사전에 맞는 말이라도 실제 소통을 지연시키거나 오해를 낳는다면, 공적 언어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언어는 박제된 규범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며 기능하는 도구다.


문제는 이 간극을 무시한 채, 특정 표현을 즉각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을 ‘문해력이 부족한 집단’으로 규정하는 태도다. 이는 현실의 언어 환경을 반영하기보다 과거의 기준을 현재에 강요하는 방식이며, 언어를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선별의 장치로 바꾼다. 이해를 돕는 대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려내는 도구로 쓰이는 순간, 공적 언어는 본래의 기능을 잃는다.

“익일 회식”이라는 표현은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익일’이 ‘다음 날’이라는 뜻이라는 사실과 별개로, 많은 이에게는 한 번 더 해석이 필요한 말이다. “내일 회식”이라고 하면 즉시 전달될 메시지를 굳이 어렵게 만드는 선택은 효율적이지 않다. 더 나아가 이를 알아듣지 못한 책임을 듣는 이에게 돌리는 태도는, 언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위계를 만드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문해력의 본질은 어휘량이 아니다. 핵심은 메시지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되느냐다. 공적 영역에서는 이 기준이 더욱 엄격해야 한다. 정책과 행정, 공공 소통은 서로 다른 배경과 수준을 지닌 시민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공적 언어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설계돼야 한다.

그럼에도 일부 공적 언어는 여전히 불필요하게 어렵고 추상적인 표현을 고집한다. 이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권위를 유지하려는 무의식적 선택에 가깝다. 어렵게 말할수록 전문적으로 보이고, 이해하기 어려울수록 높은 위치에 있는 듯한 착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언어는 신뢰를 높이기보다 거리감을 키우고, 결국 소통을 약화시킨다.

공적 언어를 사용하는 위치에 있을수록 그 책임은 더 무겁다. 그들의 말은 개인의 표현을 넘어 사회적 기준이 된다. 그렇기에 더 쉽고, 더 분명하며, 오해의 여지가 없는 말이어야 한다. 쉽게 말할 수 있음에도 굳이 어렵게 말하는 선택은 능력이 아니라 책임의 회피에 가깝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중의 문해력을 개탄하는 일이 아니다. 왜 공적 언어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유지되는지, 그 구조를 되묻는 일이다. 언어는 사람을 잇는 도구다. 그 도구가 일부러 복잡해졌다면, 문제는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만든 방식에 있다.

대중은 평가받는 수험생이 아니다. 공적 언어 또한 변별을 위한 시험지가 아니라, 누구나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 안내문이어야 한다. 결국 질문은 단순하다. 더 많은 단어를 외우게 할 것인가, 아니면 더 잘 이해되는 말을 선택할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지금의 문해력 논쟁은 착시다. 소통을 주도하는 쪽이 불통의 언어를 선택하고, 그 책임을 대중에게 전가하는 구조. 바로 그 지점에 우리 사회의 ‘언어 권위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출처 : 전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