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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란

도예공방

도예란?

‘도자기 공예’를 줄여 이르는 말.

도자기

일반적으로 도기·자기라고도 한다. 도자기에 사용되는 원료는 점토·장석·규석·도석 등의 무기물질이 있으며, 이것을 단독 또는 혼합하여 성형한 다음 열을 가하여 경화(硬化)시킨 제품을 말한다. 도자기에는 자기·석기·도기·토기 등이 있다.

도자기 역사 및 기법

도자기 역사

신석기시대(약 8000년전)

처음 만들었던 자기는 저화도연자도기(低火度軟瓷陶器)에 지나지 않았지 만 견고한 기명(器皿)을 향한 끊임없는 기술의 개발과 선진한 중국도자기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노력은 중국과 함께 세계 도자기 발전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신라말, 고려초(9-10세기경)

청자는 중국 남북조시대(4세기경)에 시작되었으나 당(唐)대후기(8-9세기경)가 되어서야 고급의 청자를 만들었고 우리나라도 중국과 비슷한 청자를 만들기 시작하고 곧이어 12세기경에는 청자의 종주국이었던 중국인마저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고려비색청자(高麗翡色靑磁)를 완성시켰 다.
우리나라의 청자가 세계도자문화의발전에 기여한 것으로는 비색(翡色)의 완성과 상감시문(象嵌施紋)기술의 창안과 환원염번조법(還元焰燔造法)에 의한 산화동의 적색을 발견한 것이 대표될 수 있다.

고려후기

청자의 제작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유태(釉胎)의 비색이나 정교한 상감기술은 퇴조 하지만 양적으로는 다중생산되어 전국적으로 자기를 만들었다.

조선시대

일부 상감청자가 지속되는 한편 장식기술을 달리하는 분청자(粉靑磁)가 서서히 증가하여 주류를 이루었다. 분청유는 청자의 태토위에 백토를 씌워 시문을 한 백토분장회청사기(白土粉粧灰靑沙器)의 약칭이며 조선시대 전기에 성행하였다가 백자(白磁)와 유동기(鍮銅器)의 등장으로 16세기후기에 소멸하였다.
백자는 고려시대에도 일부 만들어 졌으나 본격적인 제작은 중국의 원말기, 명초기(14세기경)도자문화의 주류가 청자에서 백자를 이행(移行)하는 커다한 흐름과 함께 시작하였으나 15-16세기부터는 백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17세기이후에는 백자가 주류가 되었다.
조선왕조의 국초부터 백자를 '어용지기(御用知器)'로 정하여 그의 제작을 관요(官窯)에 한정시켰다. 그 결과 백자에는 검소, 검약의 높은 성리학적 미의식이 표출되어 단아(端雅)하고 간결(簡潔)한 조형미를 창안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다중생산화에 실패하여 근대화의 과정을 지나면서 서서히 소멸하였다. 분청사기는 분청회청사기(粉靑灰靑沙器)의 준말로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와는 미의 방향을 달리하는 한국 도자기상 독특한 영역을 차지하는 조선전기의 도자기입니다.
태토(胎土)는 14세기말로부터 15세기초에는 수비(水飛)가 잘 안되어 잡물이 섞인 흑회색이었으나 정선된 회색 경질의 태토로 차츰 발전하며 기형도 둔탁함에서 벗어나 경쾌해지고 기벽은 얇아집니다.
유약(釉藥)은 청자계통의 투명유가 기본이며 태토가 흑회색으로부터 밝은 회색으로 발전함에 따라 유조도 암록색에서 밝은 회청색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정선된 태토,유약에 함유된 미량의 철분 그리고 번조가 이루어진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분청사기의 표면색이 밝은 회청색으로 나타나는 때는 대략 조선왕조의 정치, 경제, 문화가 안정되는 세종때입니다. 그러나 15세기 중후반이 되면 희뿌연 반투명의 유색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청사기의 발생은 14세기말 내지 15세기 초엽경이며 퇴락한 고려상감청자로부터 상감문이 이어지는 동시에 인화문이 성글게 찍히기 시작하고 세종때에는 인화문이 정돈 세련되며 새로운 조선조 기풍의 상감문과 면상감이 고안 창출되었습니다. 이어서 박지, 조화기법이 등장하는 등 분청사기는 다양한 발전을 맞게됩니다.
15세기 후반 세조, 성종때에는 인화문은 절정을 이루나 16세기에 가까워지면서 퇴조의 현상을 보이며 귀얄문은 경상도지방에서도 번조되지만 특히 전라도지방에서 담금분장기법과 함께 특색을 이룹니다. 충남 공주지방에서는 귀얄과 담금분장기법 위에 추상화된 철화기법이 특별히 발달했습니다. 16세기가 되면 인화문은 흐트러져 완연히 백자화되어 가고 귀얄과 담금분장문도 분청사기의 특징보다는 백자의 특징을 더욱 닮아가는데 결국 국내, 국외의 사회, 문화의 변화추세에 따라 분청사기는 백자로 흡수 소멸되었습니다.
이를테면 15세기 후반 경기도 광주에 관요로서의 분원(分院)이 성립되어 백자를 생산하게 되므로 토산공물로서 조달되던 지방의 관아용 도자기의 생산에 영향을 미쳐 16세기에는 생산량이 점점 줄어들다가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맥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분청사기의 종류(기법)

상감기법(象嵌技法)

고려청자 상감기법의 연속으로 음각문양선 안에 백토나 자토를 넣고 번조하면 백색과 흑색으로 문양이 나타나게됩니다. 상감기법에는 선상감과 면상감기법이 선행된 것으로 15세기초에는 청자의 여운이 짙으나 대략 1420년 전후가 되면 조선특유의 상감문양으로 발전합니다.

면상감기법

고려청자 상감기법의 연속으로 음각문양선 안에 백토나 자토를 넣고 번조하면 백색과 흑색으로 문양이 나타나게됩니다. 상감기법에는 선상감과 면상감기법이 선행된 것으로 15세기초에는 청자의 여운이 짙으나 대략 1420년 전후가 되면 조선특유의 상감문양으로 발전합니다.

상감기법(象嵌技法)

박지기법으로 이행해 가며 대체로 15세기 중엽까지 계속됩니다.15세기 후반에는 백자에도 상감기법이 이용되나 곧 자취를 감춥니다. 문양으로는 연, 연당초, 연버드나무, 목단, 초화, 갈대, 물고기, 어룡, 파도 등의 문양이 등장하며 때로는 이들이 도식화되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하여 새로운 문양의 경지를 나타냅니다.

인화기법(印花技法)

시문하고자 하는 무늬의 도장을 만들어 그릇표면에다 일정하게 찍어 무늬를 낸 후 백토로 메꾸어 넣는 기법입니다. 모든 종류의 기형에 응용되며 처음에는 국화문, 육각판문(六角辦文), 3원문, 6원문과 같은 도장이 성글게 한줄 혹은 두줄 정도로 인화되는데 15세기 중엽경에는 집단화된 국화문, 연권문(蓮圈文), 승렴문 등이 그릇 전체에 빽빽히 찍혀 하얗게 배토분장되어 인화기법은 절정을 이루게됩니된다.
도장이 성글게 찍힌 인화문 그릇은 고려상감청자의 여운이 짙은 상감기법의 분청사기와 같이 출토되므로 대개 15세기 초에 발생하여 1420년경에 문양의 구도가 잡혀 안정되고 15세기 중엽경에는 세련됩니다.

박지기법(剝地技法)

그릇전체에 귀얄로 백토를 바르고 시문하고자 하는 문양을 그린 후 문양외의 배경을 긁어내면 문양의 백색과 배경의 회색이 드러나 백색과 회색의 대비가 이루어지는데 이를 박지기법이라고 합니다. 이 기법은 세종때 이미 세련되며 활달하고 생동감에 넘치는 모란, 모란당초, 연화, 연화당초, 잎, 물고기 등의 문양은 그 당시인들의 휼륭한 기량을 보여줍니다.

음각기법(陰角技法)

그릇의 표면을 백토분장한 후 원하는 문양을 선으로 음각하면 태토의 회색이 문양선으로 표현됩니다. 회화적인 사실화로부터 변형 단순화된 문양으로까지 다양하게 표현되며 문양소재로는 모란, 모란당초, 연, 연당초, 물고기, 잎, 버드나무, 가옥, 인물, 추상적인 문양 등이 있습니다.

철화기법(鐵畵技法)

귀얄로 백토분장을 한 후에 철분이 많이 포함된 안료로 그림을 그리면 흑갈색 혹은 갈색으로 문양이 나타납니다. 대개 구연부와 굽언저리에는 백토를 바르지 않아 백토와 회색태토(胎土)와의 대비가 선명하며 특히 귀얄 자국이 뚜렷하여 철화문양과 어울려 신선한 맛을 줍니다. 문양은 목단, 연, 목단당초, 연당초, 물고기, 삼엽문, 당초문, 버드나무, 새, 등 분청사기에 자주 사용되는 각종의 문양이 표현되지만 특히 추상적이고 도식적인 일회의 능숙한 필치로 구사되어 현대인의 미감에도 잘 영합됩니다.

귀얄기법

귀얄기법은 박지, 조화, 철화기법에 기본적으로 쓰이는 분장방법인데 특히 귀얄기법이라 함은 귀얄이란 도구를 사용하여 백토를 분장한 후 어떠한 문양도 시문하지 않고 귀얄의 백토 붓자국만 보이는 또다른 분청사기의 특색있는 기법입니다.

담금(덤벙)분장기법

백토물에 덤벙 담가 백토를 입히는 방법입니다. 이런 경우 분장의 효과는 운동감 있는 귀얄문 보다는 차분한 분위기를 줍니다. 굽을 잡고 거꾸로 담그는 경우에는 굽과 굽언저리에는 백토분장되지 않으며 대체로 전남지방에서 많이 출토됩니다.

도자기 제작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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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비

흙을 곱게 분쇄하여 물에다 풀고 불순물 제거를 위해 흙물을 채에 거른후 가라앉은 앙금을 채취하여 그늘에서 건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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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련

건조된흙에 적당한 물을 첨가하여 발과 손 또는 떡메를 이용하여 잘 반죽하면 흙이 부드럽게되고 공기가 제거됩니다.(지금은 진공토련기를 많이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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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형

도자기의 형태를 만드는 것으로 물레성형과 주입(注入), 압출성형(押出成形) 등이 있습니다. 굽깍기: 물레성형의 경우 성형된 기물을 하루정도 건조시킨 후 기물의 하단부를 깎아서 굽(바닥)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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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각

청자의 경우는 조각도를 이용하여 기물의 표면에 문양을 조각하여 상감을 처리합니다. 분청의 경우 백토분장을 하는 귀얄법이나 백토분위에 조각을 하는 박지기법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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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벌구이

초벌구이는 약 850~900℃에서 소성합니다.
* 백자의 경우는 초벌구이 후에 화필로 그림(코발트안료,철화,진사 등)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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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유

초벌구이된 기물에 유약을 입히며 시유방법으로는 담금법, 분사법, 도포법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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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구이

유약을 입힌 기물을 1200-1300℃에서 소성합니다.